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퐁파두르 부인 (문단 편집) == 자식 == 아들 샤를 기욤 루이 ([[1741년]] ~ [[1742년]]) : 남편 데티올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rtrait_of_Alexandrine_Le_Normant_d%27%C3%89tiolles_%28daughter_of_Madame_de_Pompadour%29%2C_playing_with_a_Goldfinch.jpg|width=400px]] || || '''딸 알렉상드린'''([[1744년]] ~ [[1754년]]) || 남편 데티올과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루이 15세]]의 눈에 들어 남편과 별거하게 된 후에는 친정 아버지에게 맡겼다. 루이 15세가 '팡팡'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후원해줬다고 한다. 퐁파두르 부인은 알렉상드린을 좋은 가문으로 시집보내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다. 처음에 그녀가 희망한 상대는 루이 15세가 다른 애인에게서 얻은 아들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루이 15세가 난색을 표해 무산되었고, 다른 상대들도 퐁파두르 부인의 신분을 탐탁찮게 여겨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귀족 가문의 후계자와 약혼시키는 데에 성공하긴 했으나, 정작 기숙학교에 들어가 있던 알렉상드린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다. 따라서 퐁파두르 부인은 직계 자손이 없으며 생전에 그녀가 기거했던 [[엘리제 궁전]]은 루이 15세에게 상속되었다가 현재 [[프랑스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 참고로 퐁파두르 부인은 신분이 신분인지라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화장을 하고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언제라도 루이 15세가 원하면 정말 심각하게 아프지 않은 이상 단장하고 연회에 불려 나가야 했던 처지였던데다, 루이 15세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커서 알렉상드린이 죽었다는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에 궁정에 출입하던 귀족들 중 상당수는 그런 퐁파두르 부인을 동정했다고 한다. 어떤 귀족은 퐁파두르 부인을 위로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동경해도 나는 당신을 동정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넸다는 비화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